No.40 조회수 : 2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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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섭님 2021.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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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딸 김옥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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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우리 아버지
아버지가 떠나 신지 어언 40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금도 안타까운 것은 제가 멀리 외국에 있어서 맏이로서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 한일입니다. 유교사상이 만연하여
아들만을 선호하였던 그 시절에 저는 6남매(딸 셋 아들 셋)의 맏딸로 태어났지만 누구보다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고 모든 일에 맏이의 우선권을 누렸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일찍이 개화하셔서 새로운 서양문물을 받아 드린 신사였습니다.
일찍이 일본 유학을 다녀오셨는데. 동경유학생 독립만세사건에 연루되어 학업을 중단하시고 만주로 가시게 되었고
해방과 함께 월남하셨는데 6.25 동란시 반동분자로 체포되어 총살형을 받아 총탄 일부가 박힌 채로 평생을 사셨습니다.
부산, 대구 피난 시절을 걸쳐 1953년 서울로 환도하셨습니다. 참으로 험한 세상을 살아오셨습니다.
그런 어려운 가운데도 ‘아는 것이 힘’이라고 자녀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교육에 온 정성을 다하셔서
우리 6남매가 모두 남부럽지 않은 성공적인 삶을 실수 있게 하신 것 감사드립니다.
또한 우리 가족 모두 한경직 목사님이 시무하셨던 영락교회에 등록하여 세례를 받고 교회학교, 성가대등에서 봉사하게 하였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언 9장 10절)’하시며 신앙 생활도 잘 할 수 있게 기도하여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그토록 다시 가고 싶어 하셨던 일본 여행을 끝내 못 보내 드렸고 너무 일찍 소천 하신 것이 무엇보다 마음이 아픕니다.
지금도 어쩌다 꿈에서 뵙는 아버지의 모습은 옛날 그대로 여전히 반듯하시고 너무 멋지십니다. 하늘나라에서 어머니와 함께 행복하게 지내시리라 믿습니다.
아버지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맏이 옥란 올림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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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12 10:34

    아버지와 어머니 이제 주님의 품에 안긴지도 몇 십년이 됩니다.
    아버지는 제가 결혼하기 전에 주님께 가셨음으로 저의 아내와 손주인
    아롬이와 주원이를 못 보고 가신것이 아쉽습니다.
    누나 셋을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인 경기 여고에 진학시키시고 형과 나 동생
    아들 셋은 모두 서울고등학교에 진학시키셨읍니다.
    자라면서 한번도 야단 치시거나 매를 든적이 없으시고 항상 사랑으로
    키우셨기에 우리 모두가 반듯하게 우리나라의 엘리트가 되게 키우셨읍니다.
    지금 처럼 의학이 발달되었으면 오래 오래 90넘게 사셨을 텐데
    추석을 맞이하여 더욱 그립고 부모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